서울 나들이 - 행주산성 보고 원조국수집 들리다
서울 가는 길에 행주산성 & 원조국수집 다녀오다
가까이 지내는 제자가 꽤 오래 전부터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부근에 있는 잔치국수집 이야기를 해줬다. 그 집은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파는데 가격도 저렴(3,000원)하고 맛있고, 양도 많이 준다고 한다.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진 집이어서 많은 글들이 블로그와 카페에 올라와 있었다. 특히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국수집이었는데 상호가 그냥 "원조 국수집" 이었다.
국수를 즐겨하는 나도 언젠가 그 국수집을 찾아가서 시식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 2008년 11월 29일 처조카의 결혼식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있다고 하기에 이 기회에 그 국수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서 국수만 먹으려고 그곳까지 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인근에 둘러 볼 곳을 찾아 보니 행주산성이 지척에 있다. 자연스럽게 행주산성을 보고나서 국수집을 찾자는 일정이 짜여졌다.
춘천에서 오래 살다보니 서울의 변화에 많이 둔감해졌다. 70년대에 대학 4년, 공군장교 시절과 1년간의 회사 생활을 끝으로 서울을 떠났으니 서울의 거리는 갈 때마다 생소하다. 특히 세종로의 경우는 내게 갈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 이번에 세종로 가 보니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79년 공군을 제대하고 어떤 회사에 취직하여 시청앞 빌딩 23층에 근무할 때는 고층 건물의 청와대쪽 창문은 모두 밖이 보이지 않는 우윳빛 유리를 달아야 했다. 컴컴할 때 출근하여 하루종일 밖을 내다보지 못하며 일을 하고 어두어 퇴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유리창은 1980년 후반에 투명한 유리로 교체되었다.
그러하니 세종로에서 청와대가 보이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세종로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보존 가치가 있다고 지정된 동아일보 사옥과 교보빌딩을 제외하고는 옛 모습의 빌딩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 사옥 옆의 (구)광화문전신전화국, 조선일보 사옥 등은 리모델링을 한 모습이다. 그런데 교보빌딩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어 보인다.
1. 세종로에서 결혼식 보고
[세종로의 북쪽으로 인왕산 아래 청와대가 바로 보인다]
[옛 동아일보 사옥은 완전히 유리벽에 둘러 쌓여 있는 느낌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옛날과 같다]
2. 행주산성 찾아가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행주산성에 가려면 지하철 6호선을 타고 고양시 화정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15-1, 15-2 또는 시내버스 85-1번을 타면 된다고 한다. 결혼식 참석을 마치고 경복궁역까지 걸어가 지하철 6호선에 올라 고양시로 향했는데 이 지하철은 북쪽으로 구파발까지 갔다가 고양시로 내려 오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요금도 비쌌다. 화정역에서 내려 15-1번 마을버스(화정역 - 행주산성 운행, 1시간 간격)를 탔는데 출발까지 2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고양시 시내버스는 서울권과 같이 환승이 가능하여 경복궁에서 행주산성까지 운임은 1,700원이었다.
[행주산성 주변 지도]
[스크랩한 글]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幸州洞)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산성으로 1963년에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 때 장군 권율(權慄)이 대첩을 이룬 싸움터이다. 1592년(선조 25) 7월 8일 이치(梨峙)에서 왜적을 격멸한 권율은, 12월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다시 적을 물리친 뒤 서울 수복작전을 개시, 조방정(助防將) 조경(趙儆)과 승장 처영(處英) 등 정병 2,300명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德陽山)에 진을 치고 서울 수복을 노렸다. 이때 왜군 총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의 부하 장성을 거느리고 3만여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권율은 이들을 처절한 접전 끝에 크게 무찔렀다고 한다.
이 싸움에 부녀자들도 동참을 하여 치마에 돌을 담아 옮기는데, 치맛자락 밑으로 속옷이 보이니 여자들이 자연히 부끄럽게 되었다. 그것도 수 많은 남정네들이 보는 앞에서. 그래서 생각한 게 앞치마를 입는 다는 것이었다. 이에 많은 여자들이 치마 밖에 앞치마를 입어 마음 놓고 돌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돌을 담아 옮기던 앞치마를, 당시 행주산성의 이름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행주산성 입구와 전경]
[행주산성 입구에 서 있는 안내도]
[행주산성의 정문 대첩문 / 어른 입장료 1,000원]
행주산성의 정문 대첩문을 들어서면 바로 권율 장군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행주산성의 관람은 이 동상으로부터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우측에 충장사, 대첩기념관이 있고 정상 주변에는 진강정과 덕양정 등 2개의 정자가 있고 정상에는 행주대첩비가 서 있다. 대첩비 뒤로는 영상홍보관인 충의정이 있다.
[권율 장군 동상]
[권율 장군 동상 뒤편에는 행주대첩 장면들로 장식되어 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충장사 입구]
[충장사 정문]
[충장사 사당 - 현판 글씨가 눈에 익다]
[충장사의 권율 장군 영정]
충장사를 나와 계속 올라가면 우측에 대첩기념관이 있다. 대첩기념관에는 임짐왜란 때 사용하던 각 종 무기류와 권율 장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대첩기념관]
[행주산성 정상으로 가다 보면 인천공항 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다리인 방화대교가 보인다]
[행주산성 동쪽 끝에 있는 진강정]
[행주산성 정상에 있는1970년에 세운 행주대첩비]
[조선시대에 세운 대첩비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첩비에서 바라본 덕양정]
[대첩비 후면에 있는 충의정 - 영상홍보관]
[충의정 앞마당의 기품있는 자태의 살구나무]
[정상에서 바라본 방화대교]
[행주산성의 북쪽 산]
[행주산성에서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
[한강의 끝에는 63빌딩이 보인다]
충의정을 지나면 하산 길로 접어든다. 하산은 충의정 후면에 있는 토성을 땅라 내려 왔는데 이 토성은 400m 정도 복원하여 조성한 것이다.
[행주산성의 성곽인 토성]
3. 산성을 나와 원조국수집으로
행주산성 둘러보기를 마치고 원조국수집을 찾아 갔다. 행주산성 매표소에서 문의하니 산성을 나가 오른쪽 길을 따라 가다가 큰 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가면된다고 한다. 약 5분 정도 걸어가니 차들이 잔뜩 주차해 놓인 음식점의 상호가 "元祖 국수집"으로 되어 있다. 오후 3시가 지났는데 식당 안은 꽉 차 있고 5-6명이 줄을 서 있다. 집사람과 창가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각 3,000원)를 하나씩 주문하였다. 많이 달라고 따로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듣던 대로 큰 그릇에 가득 담긴 국수가 나왔다. 맛이 괜 찮았다. 집사람의 표현으로 만약 5천원이면 찾아 와서까지 먹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일까? 여하튼 국물은 좋았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원조국수집의 도로쪽]
[원조국수집 앞 도로]
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을 물어보니 가는 곳이 어디냐고 하기에 청량리라고 하니 자세히 설명해 준다. 원조국수집 앞 도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891번(금촌-신촌)버스를 타고 합정동역에서 내려 제2호선을 타면 된다고 한다. 891번은 원조국수집 앞 도로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는 자유로-강변북로를 따라 15분 정도 달려 바로 합정역에 도착하였다. 지하철 2호선에 올라 시청앞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청량리에 도착하니 1시간이 채 안걸리고 요금도 1,100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