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를 부리다 당한 해외여행 중의 소매치기
- Peru의 수도 Lima에서
해외여행을 떠나면 누구나 중요한 소지품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걱정하게 된다. 행여 여권이라도 도난당하는 날이면 그 여행은 큰 낭패를 보게 되는 데, 주변에 해외여행 중 소지품을 도난당하여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여행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 소지품을 잃지 않으려고 상당한 주위를 기울이고는 했다. 우리나라 여행자들 대부분은 여행기간 동안 여권이나 돈 같은 중요한 소지품을 작은 가방에 넣고 허리춤에 차거나 어깨에 메든가 아니면 목에 걸고 가슴속에 파묻고 다니고는 한다. 그런데 외국 여행자들의 경우에는 그런 가방을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특히 배낭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은 마치 자기가 사는 나라에서 지내던 행색 그대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늘 부러웠다. 그렇다면 그들은 중요한 소지품을 어떻게 보관하는 것일까? 그들의 편한 모습을 보면, 허리춤에 가방을 차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안쓰러워 보이고는 했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자유롭게 다닐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다니고는 했다.
여행 중 소매치기를 조심 해야겠다는 경험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름 방학 중 2개월간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에 연구차 방문했을 때다. 그 대학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8월 중순 독일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따라 프랑스의 파리를 시작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패키지로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여행의 시작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파리에서 첫날밤을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 이전까지 해외여행을 별로 다닌 경험은 없으나 1992년 1년간 미국에 교환교수로 나가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파리에서의 첫날밤을 호텔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간 자료를 보고 호텔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지 콩코드 광장으로 나갔다. 저물어가는 콩코르드 광장(오른쪽 사진: 당시 콩코르드 광장에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개선문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개선문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 올 때였다. 호텔이 있는 라데빵스로 가는 지하철이 도착하여 막 타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터키계 사람들이 내 양쪽에 서더니 바닥을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지껄이는 게 아닌가? 불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우리말로 “무슨 소리야? 발 안 밟았는데!!”라고 했다. 그런 순간 갑자기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오른손에 캠코더를 들고 있었기에 왼손으로 지갑이 들어 있는 오른쪽 주머니를 잡으니 지갑이 주머니를 떠나다가 잡히는 게 아닌가? 다행이 지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 되었다. 같이 동행했던 집사람과 전남대 교수 부부께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 때 지갑에는 여행과 귀국시까지의 생활에 필요한 경비 일체가 들어있었다. 만약 그날 그 돈을 몽땅 잃어버렸으면 그 때의 여행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귀국하는 날까지 큰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지갑을 잃을 뻔 했던 그 상황은 나머지 여행일정에 큰 부담을 주었었다. 도대체 이 돈을 어디에 숨겨가지고 다니지? 여행 내내 그 돈을 간수하느라고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어슴푸레 남았다. 그 이후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중요한 소지품을 작은 가방에 넣어 허리춤에 차고 다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행색으로 다니다 보니 여행 중에 촬영한 모든 사진에 그 가방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그 사진을 보며 난 또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언젠가는 외국인 배낭 여행자와 같은 모습으로 여행을 할 것이라고. 언젠가는…
2010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뉴욕 인근의 뉴저지에서 6개월간 생활을 했다. 처제 가족과 머무르게 되어 집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기왕에 미국에 장기간 머무르게 되었으니 귀국하기 전에 남미를 다녀올 계획을 일찍이 세워 놓았었는데 드디어 8월 18일 뉴욕을 출발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 도착하여 1개월간의 남미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리마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숙소 근처의 리마 신도시 Miraflores를 둘러보고는 이동시간의 변경으로 리마 구시가지는 다시 돌아와서 보기로 하고 그 다음날 오후에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의 관문도시 쿠스코로 출발하여 페루의 유명 도시 몇 곳을 둘러보고는 10여일만인 8월 27일 다시 리마로 돌아왔다. 그 10일 간 나는 외국인 배낭 여행자처럼 가벼운 옷차림에 지갑과 핸드폰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시내를 누비고 다녔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사는 모습처럼.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이게 바로 외국인들의 여행 그 방식이구나!! 나도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몹시 기분 좋았다. 그런데 이러한 객기가 내게 큰 경험을 하게 할 줄이야……
이제 내일 아침이면 비행기를 타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떠나야하는 페루의 마지막 날 일정변경으로 남겨놓은 리마의 구시가지 Centro의 관광에 나섰다. 페루에 도착한지도 10여일이 지났으니 거의 아는 단어가 없는 스페인어도 그 생경함이 덜 해졌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떠나 시내버스를 타고 리마시내 구시가지로 향했다. 오전 10시경 리마의 구시가지에 있는 산마르틴 광장에 도착하여 그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리마시의 중앙로라고 할 수 있는 라우니온 거리를 따라 리마의 중심인 아르마스(Armas) 광장의 대성당과 대통령궁을 둘러보고는 다음의 목적지 San Francisco 교회로 향했다.
[리마 센트로의 산마르틴 광장]
[리마의 명동 라우니온 거리]
[페루의 중심 리마 아르마스 광장]
그날 아침식사가 부실해서인지 허기가 느껴져 음식점을 찾았는데 가이드북에 나온 음식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교회 광장 주변에 상호가 불분명한데 상차림을 준비하는 음식점이 있기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영어로 물으니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주인장 아줌마를 불러준다. “어떤 음식이냐?”고 물으니 우리나라로 보면 점심특선 요리라고 설명한다. 1인분에 11Sol인데 괜찮은 식사였다.
음식점을 나서 San Francisco 교회 광장에 들어서니 교회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요즈음 이런 교회도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들 대부분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 교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아닌 듯하기에 줄을 서 있지 않은 왼쪽의 문을 보니 그 쪽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그 쪽 문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교회 오른쪽 첫 번째의 예수상에 참배를 하러온 사람들 이었다. “아마 이곳에 참배를 하면 특별한 복을 주시는 모양이지?”하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 교회와 예수상에 참배를 하는 성도들]
집사람은 앞으로 나가고 나는 교회 내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물방울이 날아오더니 얼굴에 떨어진다. 얼굴에 떨어진 물기를 손으로 찍어 냄새를 맡아보니 신 냄새가 난다. “아니 이게 웬 식초 같은 게 어디서 떨어졌을까?” 하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1m 50cm 정도의 키에 20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다가오더니 나보고 뭐라고 떠들어 대더니 옷을 가리킨다. 겉에 입은 점퍼를 보니 여러 곳에 회색빛의 반점이 생겼다. 그 애는 내게 다가오더니 수건 같은 흰 천을 꺼내 무어라 떠들며 닦아주려고 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가까이 오는 것을 말리려 하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때 또 어떤 덩치가 작은 40대의 남자가 나타나 다른 쪽에도 있다고 점퍼를 베끼려 한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며 머리카락이 일어서는 느낌이 온몸에 퍼진다. 그런 상황이 약 5분간 지속되다가 정리가 되고나서 그 둘이 가버렸다. 앞서가던 집사람을 찾아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 천정에서 비둘기가 똥을 쌌나?” 한다. 바로 그 때 갑자기 지갑이 생각나며 머리카락이 곧게 서는 느낌이 든다. 손을 주머니에 넣으니 지갑이 없어졌다. 아뿔싸!! 그 사이 지갑이 없어졌구나! 내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구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집사람에게 지갑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일단 교회 밖으로 나왔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 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나쁜 상상이 다 떠오른다. 그럼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집사람이 “점심 먹던 식당에 가서 주인아주머니가 영어를 하니 도움을 청해보자”고 한다.
음식점으로 다시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놀라며 한참을 수배 하더니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경찰을 불러준다. 그 사람에게 “교회에서 지갑을 도둑맞았다”고 하니 다른 경찰을 불러준다고 하며 기다리라고 한다. 한참 후에 바싹 마른 경찰이 나타나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일단 신용카드 분실신고부터 하는 게 낫겠다며 나를 옆 골목에 있는 가게로 데려갔는데 그곳은 인터넷 카페였다. 나보고 전화를 가리키며 신고를 하라고 한다. 인터넷 카페 종업원은 젊은이였는데 나의 도난사건을 매우 애석해 하는 표정이다. “컴퓨터를 써도 되냐?”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일단 내가 거래하는 국내의 3개 은행의 홈페이지를 열어 전화번호를 찾고 내가 가지고 간 휴대전화로 분실신고를 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는 휴대전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 로밍이 자동으로 되지 않으나 페루만은 우리나라와 같은 CDMA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화를 쉽게 할 수 있었다. 인터넷 카페를 떠나며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니 종업원 젊은이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가라고 한다. 고맙다고 하고 그곳을 떠났다.
분실신고를 마치고 나니 그 경찰이 내게 경찰서로 가야한다고 한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그러면서 택시를 잡아주며 경찰서까지 6Sol에 가도록 해 놓았단다. 좀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으나 별 방법이 없어 그 택시에 올라 경찰서로 갔다. 그런데 그 경찰은 우리와 동행하는 게 아니었다. 택시에서 내려 현판을 보니 대강 번역을 해보니 관광경찰서인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서 “왜 왔느냐?”고 묻는다. 또 도둑맞은 이야기를 했다. 그곳에는 영어를 약간 할 수 있는 여직원이 한 명 있었다. 내게 일어났던 상황을 적어 달라고 한다. 나의 신원을 쓰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잃어버렸냐?”는 내용을 쓰도록 되어 있다. 작성을 해 주고 한참을 기다리니 문서를 한 장 내게 주더니 이제 끝났다고 한다. 좀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으나 소매치기를 당한 경우 경찰이 더 해줄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경찰서를 떠나기 전 내가 말했다. “If you find my....” 하니 더 들어보지도 않고 “I will send it to your embassy”라고 한다. 이미 답이 준비되어 있는 게다. 결국 이 경찰서에서 하는 일은 도둑을 맞은 확인서를 작성해주어 나중에 보험 등을 청구할 때 필요한 공식적인 증빙자료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이었다. 경찰서를 나서니 내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택시를 불러 “Miraflores”라고 하니 10Sol을 내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황당한 페루의 마지막 날을 마쳤다.
[페루 관광경찰서가 작성해준 도난증명]
내가 소매치기 당한 지갑에는 미화현금 135달러와 4개의 신용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분실신고를 하는 중에 내 휴대전화에 “XX카드 비밀번호 오류”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도둑놈이 그 카드를 써보려고 시도했던 모양이다. 다행인 것은 여행경비를 모두 환전해 가지고 갔기 때문에 돈 문제는 없었으나 미국으로 돌아오는 항공료가 부족했다. 미국서 머물던 집의 동서에게 전화하여 신용카드번호를 불러달라고 하여 인터넷에서 리우데자네이로-뉴욕 항공권을 예약하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스호스텔에서 숙박을 했는데 벽에 붙은 게시물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여행 중에 어떤 사람이 와서 옷에 뭐가 묻었다고 하면 90% 이상이 소매치기니 주의할 것” 아!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여하튼 싸지도 그렇다고 비싼 치레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여행 인생에 좋은 경험을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모두 잃었으니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었기에 이제는 내가 그리던 외국인 배낭 여행자처럼 속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어느 곳에 가던지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했다. 그러면 어느 구석에선가 나의 시선을 피하는 눈길을 가끔 느낄 수 있었다. 여하튼 그 일이 있은 이후 20일 동안은 아무도 나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집사람은 그날 이후 남미를 떠날 때까지 밤이 되면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고는 했다. 이렇게 페루에서의 속 쓰린 경험은 내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2011-07-14]
'[ 세계여행 ] > 여행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세상 (0) | 2024.02.27 |
---|---|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곳 50 중에서 (0) | 2013.11.20 |